거리의 분노에서 제도 개혁으로: 인도네시아 17+8 개혁운동의 성과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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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11-18 12:38 조회109회 댓글0건본문
거리의 분노에서 제도 개혁으로: 인도네시아 17+8 개혁운동의 성과와 과제
2025년 8월 말,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의 거리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오랜 시간 누적된 정치적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무능한 권력을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했다. 이번 개혁운동은 새로운 세대가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평화적 방식으로 개혁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운동의 전개가 여전히 엘리트 중심에 머물렀고, 이러한 요구가 제도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점은 이 운동의 한계를 보여준다.
2025년 8월 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거리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였다. 정부와 국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들의 분노는 단순한 정치적 불만을 넘어, 제도적 민주화 이후 어렵게 지켜온 민주주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의 표출이자, 정치·경제적 투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제도 개혁의 요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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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시위,출처: Wikipedia Commons
2024년 2월 대선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 (Prabowo Subianto, 이하 프라보워) 대통령은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10년 만에 군부 출신 정치 지도자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그는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을 잇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우려를 샀지만, 동시에 강한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국가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24년 10월 출범 이후 1년여가 지난 지금, 기대는 점점 우려로 바뀌고 있다.
프라보워 정부는 출범 직후 군법 개정을 추진해 2025년 3월 국회를 통과시켰으며, 군인의 정부 요직 진출과 민간 권한 확대를 허용해 ‘군과 정치의 분리’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시에 노동법 개정 논의와 복지 축소 정책으로 노동계와 시민의 불만이 고조됐고, 물가 상승과 청년 실업이 겹치며 사회적 불안이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프라보워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군 주도의 의식을 부활시키자, 시민사회는 군사주의 회귀라며 반발했고, 일부 시민들은 국기를 거꾸로 걸거나 온라인에서 ‘원피스 해적기’를 내걸며 저항의 뜻을 나타냈다.
2025년 8월 하순, 분노는 작은 불씨에서 순식간에 전국적 불길로 번졌다. 대규모 시위의 직접적 도화선은 일부 국회의원에게 지급된 ‘월 5천만 루피아 주택수당’ 보도였다. 월 최저임금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이 주택수당으로 지급됐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8월 25일, 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이 자카르타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들었다. 의회는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관사를 지급받지 못한 일부 의원에게 임시로 지급된 법정 수당이라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이미 여론은 냉정했다. 시민들은 주택수당을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의 과도한 특권 구조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인식했다. 이는 오랫동안 누적된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진압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비극이 발생했다. 8월 28일 저녁, 경찰의 기동대 차량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한 오토바이 배달기사 아판 쿠르니아완(Affan Kurniawan)을 치어 숨지게 한 영상이 확산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됐다. 영상은 곧장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졌고, 이 죽음에 공감하고 분노한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정부는 즉각 수습에 나섰다. 대통령은 애도를 표하고 독립적 수사를 지시했으며, 의회는 수당 지급 중단을 발표했다. 그러나 분노로 시작된 시위는 일부 지역에서 폭력 양상을 보이며 격화됐다. 공공시설물 방화, 대형 쇼핑몰 습격, 정치인 자택 공격 등이 이어지자 언론은 이를 집중 보도했고, 시민들은 다시금 경찰과 군의 강경 진압을 우려했다.
이때 시위 주도 세력은 빠른 판단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충돌이 반복되자 집행부는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 아래 시위를 중단하고 평화집회로 전환했다. 대학생 단체, 노동조합, 변호사협회, 시민단체 등이 이에 동참해 자율적 규칙을 마련하고 새로운 구호를 제시했다. “자카르타를 지키자, 인도네시아를 지키자, 리셋 인도네시아”라는 구호는 분노의 표출을 넘어 개혁 요구로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었다.
이 흐름에서 ‘17+8 개혁안(Tuntutan Rakyat 17+8)’이 제시됐다. 17개 단기 요구와 8개 장기 개혁 과제로 구성된 이 문건에는 국회의원 특혜 중단, 시위 피해자에 대한 독립적 조사와 책임자 처벌, 군·경의 권한 남용 방지, 노동·복지 제도의 회복 등 구체적 과제가 담겼다. 운동 지도부는 폭력적 국면을 평화적 집회로 전환하고, 분산된 시민들의 분노를 개혁 의제로 모아냈다. 이는 이번 시위를 단순한 불만 표출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고 재정립하려는 ‘17+8 개혁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17+8 개혁운동이 단순한 분노의 표출에 그치지 않고 평화적 개혁운동으로 전환된 것은 가장 큰 의미로 평가된다. 거리의 분노가 무질서한 폭력으로 번지지 않고, 시민들이 스스로 규율을 세워 평화집회를 이어간 것은 인도네시아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특히 시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17+8 개혁안’으로 집약하며, 분산된 불만을 제도 개혁의 언어로 바꿔냈다. 이는 자발적 참여가 일정한 제도적 방향성을 획득한 시민운동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운동은 또한 세대교체를 분명히 드러냈다. 주도세력의 중심에는 온라인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젊은 세대가 있었다. 그들은 온라인 저항을 조직하고, 해시태그와 밈, 풍자 이미지, 패러디 영상 등 문화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운동을 확산시켰다. 부모 세대가 1998년 거리에서 외친 민주화를 몸으로 겪었다면, 이들은 디지털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언어화하고 있다. 1998년의 개혁세대와 2025년의 개혁세대가 서로를 기억하며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번 운동은 세대 간 ‘개혁의 배턴(baton)터치’로도 읽힌다.
운동의 파장은 인도네시아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개혁운동은 정치적 무능과 부패 문제가 드러난 필리핀, 동티모르, 네팔 등으로 이어지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의 방식을 벤치마킹하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개혁운동은 더 이상 국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을 모색하는 아시아 시민사회의 새로운 실험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계 또한 뚜렷하다. 무엇보다 17+8 개혁운동은 엘리트 중심의 성격을 지닌다. 개혁안이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되어 평화적 개혁운동으로 전환됐다는 점은 의미 있지만, 이는 도시에서 교육받은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나타난 문화적 저항 역시 도시의 대학문화와 국제적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엘리트 중심 운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를 지키자’는 구호 속에는 애국주의적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정부와 국가를 분리해 개혁을 요구하는 방식은 명분상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구조적 문제를 단순화하고 운동의 급진적 개혁성을 약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이 운동을 제도화할 정치적 주체가 부재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남는다. 차기 선거는 아직 멀고, 여당 연합은 여전히 견고하다. 야당의 의석은 제한적이며, 새로운 대안 세력의 등장은 가시적이지 않다. 거리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에너지가 제도권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이번 개혁운동, 특히 주도적 역할을 한 새로운 세대는 좌절의 경험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프라보워 정부는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집권 초기부터 강조해온 상징적 정책인 무상급식과 강경한 외교 드라이브에 집중하고 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스스로를 ‘외교 대통령’이라 부르며, 중동 정세를 둘러싼 반서구 담론을 강조하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최근 인도네시아 내에서 높아진 미국에 대한 반감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 여론을 활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사실상 프라보워 정부가 잃어버린 지지층을 회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돌파구로 평가된다.
이번 운동의 본질은 정치·경제적 투명성을 높이라는 시민의 요구다. 문제는 현 권력이 스스로의 특권 구조를 개혁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바로 그 점이 이 요구가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개혁운동에 참여한 시민과 조직이 일시적 분노를 넘어, 지속적인 조직화와 연대의 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 정치는 제도적으로 다당제와 연합정치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시민들이 일상적 정치적 연대를 이어가며 다음 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낼 때, 거리의 외침은 비로소 제도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운동의 에너지가 제도권 밖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의 장으로 확장될 때, 이번 개혁운동이 요구한 변화는 현실이 될 것이다.
저자: 박준영(현)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센터 공동연구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사
<주요 저서와 논문>
“자카르타 돌봄 노동 구조의 재구성에서 가사노동자의 은닉대본.” 『동아연구』 44(2), 2025.
“돌봄 노동의 재구성에서 돌봄 공간의 의미와 역할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임금 계약 가사 노동을 중심으로 -.” 『대한지리학회지』 60(3), 2025.
“인도네시아 선거 제도 정착과 요인 분석 : 봉쇄조항과 동시선거를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사회』 8(5), 2024.
“한국과 인도네시아 대사관 건립으로 본 탈식민의 냉전화.” 『아시아연구』 27(3), 2024.
“Postcolonial Pessimisms and Alternative Spatial Practices: Critical Interpretation of the concept of the Third Space through the Case of Fatahillah Square, Indonesia.” TRaNS: Trans -Regional and -National Studies of Southeast Asia 12(2), 2024.
출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브리프, 2025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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