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아니라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된다. 세상의 이름이나 성은 명칭의 시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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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9-15 08:31 조회8회 댓글0건본문
바셋타의 경: 태생이 아니라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된다.
.배경
바셋타와 바라드와자라는 바라문 학인이 '도대체 바라문이란 어떠한 사람인가?'라고 논쟁을 벌였다.
바라드와자는 "혈통이 청정하여 칠대의 조부대에 이르기까지 출생에 관해 논란되거나 비난받지 않은, 양 쪽이 모두 훌륭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그를 두고 바라문이라고 한다."고 했고, 바셋타는 "계행을 지키며 덕행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바라문이다." 라고 말했다.
이에 붓다를 찾아 뵙고, 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되는지,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되는지 여쭙자, 붓다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출생과 가계 때문에 그를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에 매어 있다면, '존자여'라고 불리는 자일 뿐입니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릅니다.
<중략>
세상의 이름이나 성은 명칭의 시설에 지나지 않으니, 그 때마다 통하는 명칭으로 생겨나 여기 저기 시설되는 것입니다.
무지한 사람에게 그릇된 견해가 오랜 세월 잠재됩니다. 무지한 사람은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된다.'라고 말합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나,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아닌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아닌 자도 되는 것입니다.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능인이 되며, 행위로 인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로 인해 고용인이 됩니다.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전사가 되고, 행위로 인해 제관이 되고, 또한 행위로 인해 왕이 됩니다.
현자들은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그 행위를 봅니다. 그들은 연기(緣起)를 보는 님으로서, 행위와 그 과보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행위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로 인해서 존재합니다.
뭇삶은 달리는 수레가 축에 연결되어 있듯이, 행위에 매어 있습니다.
감관의 수호와 청정한 삶과 감관의 제어와 자제, 이것으로 바라문이 됩니다.
이것이 으뜸가는 바라문입니다.
세 가지 명지를 성취하고, 적멸에 들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님이 하느님이며 제석천입니다.
바셋타여, 이러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출처: 숫다니빠다 pp. 32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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