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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사: 명재상 제갈공명이 유비와 함께 모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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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02 17:39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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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사: 명재상 제갈공명이 유비와 함께 모셔지다.


*무후사(武候祠)

 

-삼국시대 촉한의 명재상 제갈량을 후세 사람들이 (제갈)무후라고 불렀는데, 제갈공명을 기리기 위한 사당.

제갈량의 영향력이 비교적 컸던 운남, 사천, 귀주 삼성등에 큰 사당들이 있는데, 사천성에만 30개, 운남성에도 34개의 무후사가 있었다고 함.

-청두 무후사: 중국 각지의 현존하고 있는 무후사 중에 가장 유명하며 1961년 처음으로 중국 전국 중점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 선포되어 현재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삼국문화의 성지가 됨.

 

-명나라 초에 유비(劉備)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한소열묘(漢昭烈廟)와 합쳐져서 촉한의 건국자인 임금(유비)과 신하(제갈량)가 한 사당에 모셔지게 됨. 무후사는 오랜 역사와 깊은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한 건축과 아름다운 환경으로 유명함

 

*무후사의 역사

:서기 221년 유비 사후, 왕위를 계승한 유비의 아들 유선(刘禅)이 제갈량을 무후로 봉하고 제갈량의 거주지를 무후부로 하사했는데 

제갈량은 이곳에서 촉한의 정무와 군사를 주재했다. 한왕실의 통일을 위해 제갈량은 다섯 번의 북벌전쟁을 일으키는데 서기 234년, 

다섯번째 북벌전쟁에서 그는 사망한다.

 

촉나라에 무수한 번영과 안정을 가져다 주었기에, 그의 사후 제갈량의 생일, 제사일, 그리고 청명절에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이에 관원들이 조정에 상소하였고, 263년 한황제이자 유비의 아들 유선은 제갈량의 공로와 충성을 기리기 위해 아버지 유비의 혜릉(惠陵) 옆에 첫 번째 무후사를 세운다.

 

-그후 명,청 시대의 보수와 통합을 거쳐 무후사는 점차 현재의 규모가 되고, 중국에서 유일한 군신합사묘가 되었다.

 당나라, 송나라 때부터 명소였으며 현존의 주체 건물은 청나라 강희제 11년(1,672년)에 중건 확장. 

 현재 사원 내에는 유비, 제갈량등 촉한의 영웅상 50구를 공봉함.

 

-무후사는 유비전(劉備殿), 대청, 제갈량전(諸葛亮殿)이 있는데, 유비전이 가장 높고 웅장하고,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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